교수논단

칼럼

교수논단

게시판 읽기
[정태기] 부모, 쉴만한 물가

chci

  • 조회수6,835

5월은 가정의 달이며, 또한 청소년의 달입니다. 누가 5월을 가정과 청소년의 달로 정했는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그들의 가정환경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아이들의 뿌리에는 건강한 부모와 가정이 있으며, 상처입은 부모와 가정아래에서 많은 아이들이 상처입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건강한 가정은 어떤 가정이며,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를 말하는 것일까요?





많은 부부들을 만나 대화하다보면, 남편이나 아내보다 자녀가 더 소중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욱이 부부사이야 어떻든 자식만 사랑하며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은 사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부모는 가정의 중요한 기둥이고, 부부간의 애정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며 성장할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 두 기둥이 흔들리게 된다면 아이들의 놀이터가 불안정해서 아이들은 맘껏 뛰어 놀지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사다리를 붙잡으려 들 것입니다. 부부간의 갈등이 심하고, 그 갈등이 오래 지속될 경우에 아이들은 흔들리는 사다리에서 살아 남으려 애씁니다. 성장을 위해 써야 될 에너지가 부모의 흔들림 가운데 같이 흔들리며 상처를 입습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레 자녀들은 그 애정의 사다리를 타고 놀면서 안정적으로 자라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불안가운데 자랍니다.
그렇기에 자식 사랑의 뿌리는 부부사랑에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은 부부가 중심인 가정입니다. 가정의 중심에 부부가 아닌, 그것이 자녀이건, 시어머니이건, 다른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면 그 가정은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입니다.




가정에 보내진 신의 선물인 자녀는 부모의 사랑스러운 관심을 받으며 함께 지내다가, 때가 되면 자신의 길을 떠나는 귀한 손님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그들이 안심하고 자기 생을 살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배울 수 있는 아늑한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들이 자신들을 마치 자녀를 길들이는 동물 조련사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자녀들을 향하여, 지금까지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거나, 아니면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 주는 욕망의 성취 도구로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부모란 그들을 겸손하게 맞이하여 적절한 도움과 필요를 제공해 주며, 떠나야 할 때가 되면 잘 떠나보내는 자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이 떠나보냄을 잘 하지 못합니다. 만일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면, 혹은 홀로 살았다면 그러한 떠나보냄은 더욱 어렵습니다. 자식을 길러 오는 동안 배우자에게서 충족되지 못하는 위로와 기댐을 자식에게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러한 가정에서는 자녀 역시 부모를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평생 자신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부모를 떠난다는 것에 무척이나 죄책감을 느끼기에 정서적이나 환경적으로 묶이게 되고 이것이 많은 부분 역기능적인 역할을 합니다.


평생 남편 없이 홀로 산 어머니가 막 노동을 하며 딸 하나를 키웠습니다. 이 딸은 성장하여 결혼할 나이가 되었지만 어머니를 떠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 하나만을 보고 살아온 어머니에 대해 어떻게든지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기에, 어머니의 행복이 새로 출발한 가정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를 떠나 두 사람이 연합하여 이루어 할 결혼은 많은 장애를 안고 있습니다. 부모의 불행과 아픔이 자식에게도 이어지는 경우입니다.


이 떠나보냄은 또한 자녀가 장성했을 때만의 일은 아닙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과정이며, 부모로서 항상 배워야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무언가를 하려할 때 부모가 모든 것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막 걸음마를 배울 때 부모가 손을 놓아야 될 때가 옵니다. 혼자서는 결코 잘하지 못하지만, 넘어져 울기도 하고, 아픈 상처도 생길 수 있지만 그 과정도 배움의 과정입니다. 스스로 배우며 성숙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항상 떠나보냄을 준비하는 것이 부모의 몫이지만 이것은 또한 내 품안에 자라나는 '품어줌'의 양육의 시간이 있다는 것이며, 언젠가는 떠날 자녀들이 인생을 당당하게 헤쳐나갈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따뜻하게 '품어줌'과 적절한 '떠나보냄'은 아이들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두 날개입니다.





“도대체 어릴 적에는 그러지 않던 애가, 요즘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자녀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한번쯤은 내뱉었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우리가 보기에는 '삐딱선'이라 하는 배를 타고 갈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지 않던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이때, 자녀들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극심한 탈선의 경우가 아니라면 청소년의 갈등과, 그 갈등에서 파생되는 행위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격동기의 여러가지 심리적 부담과 긴장으로 인해 나타나는 분노나 반응들은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표현이고,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한창 자라나는 자녀에게 아무 정서적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오히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심리적으로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여 어린아이 상태로 머물러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나이가 들었어도 정서적으로 미숙한 성인들을 자주 볼 수가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부모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고, 말썽 피우지 않는 자식을 원하지만 이것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자녀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하나의 과정으로 보며, 영원히 그들에게 존재할 것처럼 불안해하며 닥달하지 말고 여유를 가집시다.
커가는 자녀들은 많은 긴장과 불안이 있어 짜증과 분노로 나타납니다. 기회만 있으면 이 불안정한 감정을 내뱉는데, 가장 만만한 대상이 가족입니다. 특히 제일 만만한 것이 어머니입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아이들은 짜증과 분노라는 매를 가지고 누구인가를 두들겨 패면서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짜증과 분노에 찬 이들로부터 아무도 매를 맞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분노를 삼켜 버리거나 다른 탈선의 방법으로 분노를 해소하려 들 것입니다. 분노를 승화시키거나 발산하지 못하고 삼켜버릴 때, 그들의 성격은 멍이 들게 되며, 심각한 탈선행위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부모는 자식이 삶에 대해 갖고 있는 긴장과 불안으로 나타나는 분노의 매를 맞아 줄 사람이기도 합니다. 한 대 맞고 그냥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라 거듭거듭 맞고도 잘 참아내는 맷집 좋은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행위따라 갚는다면 우리 중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경에서 하나님을 깊이 만난 이들이 고백한 말씀처럼 “그는 인자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길이 참으시며…”이런 하나님의 성품이 있었기에 그래도 오늘의 우리가 존재하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이같은 하나님의 품성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삶 가운데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아이들은 그들 인생의 격동의 한 때, 바람불고 비바람 몰아치는 어느 시기를 보내더라도 그 폭풍우에 뿌리째 뽑힌 나무가 아니라, 부모라는 쉴만한 물가에 뿌리를 댄 나무가되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나무로 잘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게시판 목록이동
이전글 이제야 압니다.
다음글 우리 인생의 봄날